인사동 쌈지길 만든 그녀, 롯데를 바꾸다
[중앙일보] 입력 2011.03.07 19:36 / 수정 2011.03.07 20:34
‘길로 만든 건축물’. 인사동의 명물 쌈지길의 별명이다.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건물처럼 보이지만 가운데 마당을 두고 건물이 길을 통해 이어진 골목길 구조다. 골목길을 따라 옷·액세서리·도자기 등을 파는 가게가 줄지어 있다. 이 길을 기획한 사람은 건축가가 아니라 디자이너다. 박기정(47) 롯데백화점 GF(Global Fashion) 사업부문 이사가 주인공이다. 2005년 당시 쌈지 총괄디렉터였던 그는 “디자인실에 갇혀 있던 패션을 밖으로 끌어내보자는 취지로 만들었다. 유통의 관점에서 패션을 다룬 첫 시도”라고 말했다. 그는 지난해 11월 롯데그룹 여성임원으로 영입됐다. 롯데에서는 오너 일가를 제외한 최초의 여성임원이다. 롯데백화점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디자인 경영의 핵심 인물인 박 이사를 최근 만났다.
-의류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인 백화점으로 이직했다.
“패션이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디자인하려면 소비되는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. 단순히 옷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로서 소비돼야 한다. 유통업체의 역할이 크다.”
-롯데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나.
“유통업계 1위 기업이다. 조직력과 자금력이 뛰어나다. 패션 및 디자인 분야를 키우겠다는 경영진의 의지 역시 대단하다.”
-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.
“롯데백화점의 자체 브랜드인 타스타스의 기획·디자인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. 16명의 디자이너를 뽑아 디자인센터를 구성했다. 우선 타스타스 정착에 주력할 계획이다.”
-그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.
“패스트패션(fast fashion) 브랜드 개발을 고려하고 있다. 개발한 브랜드는 롯데백화점의 해외 진출과 함께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나갈 것이다.“
박 이사는 인터뷰에서 해외 패션 브랜드들이 국내 주요 백화점의 최고 노른자위인 1층을 점령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. 그는 “10여 년 전만 해도 명동 한복판의 로드숍은 마루 같은 국내 브랜드가 차지하고 있었다. 하지만 지금은 국내 브랜드들이 자라나 유니클로 같은 해외 브랜드에 밀려났다”면서 “해외 브랜드와 경쟁해 뒤지지 않는 브랜드를 만들겠다”고 포부를 밝혔다.
-롯데그룹 최초의 여성임원으로 주목받고 있는데.
“지난해 12월 경영전략회의 때 보니 100명이 넘는 임원 중에 나만 여자더라.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낀다. 젊은 여성 후배, 특히 디자이너들에게 ‘이렇게도 살 수 있다’는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.”
-여성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.
“하나에만 매몰되지 말고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. 예를 들어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하려고 한다. 하지만 옷은 결국 사람이 입었을 때 빛을 발한다. 디자이너가 물류와 유통 등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. 그래야 일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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